좋은 글. 시

[스크랩] 가을 우체국 - 문정희

jjs2275 2012. 10. 12. 22:57

                                     가을 우체국 - 문정희
                                          가을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다가
                                          문득 우체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시인보다 때론 우체부가 좋지
                                          많이 걸을 수 있지
                                          재수 좋으면 바닷가도 걸을 수 있어
                                          낙엽 위를 은빛 자전거의 폐달을 밟고 달려가
                                          조요로운 오후를 깨우고
                                          돌아오는 길, 산자락에 서서
                                          이마에 손을 동그랗게 얹고
                                          지는 해를 한참 바라볼 수 있지
                                          시인은 늘 앉아만 있기 때문에
                                          어쩌면 조금 뚱뚱해지지
                                          가을 우체국에서 파블로 아저씨에게
                                          편지를 부치다가 문득 시인이 아니라
                                          우체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시가 아니라 내가 직접
                                          크고 불룩한 가방을 메고
                                          멀고 먼 안달루시아 남쪽
                                          그가 살고 있는
                                          매혹의 마을에 닿고 싶다고 생각한다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