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어쩌면 나는 불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 절체절명으로 불행한 일은 없다.
사람들은 아직 벗어날 방도가 있는데도 너무 일찍 절망하는지 모른다.
인간은 희망에 속는 일보다 절망에 속은 일이 더 많다.
내가 그랬다. 너무 빨리 불행하다고 외쳐 버렸는지 모른다.
그러고는 지쳐 쓰러지고 희망이 없다고 단정했는지 모른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어느 현자는 말했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마음이 편안할 때 그것이 지고의 경지라고.
그래, 나는 지금 물처럼 편안하고 고요하다.”
- 본문 중에서
시인 신달자 그녀의 붉은 눈물, 노을로 번지며 세상을 끌어안다
“나는 지금 지난 세월이 아주 희미하다.
내가 결혼을 했었는지, 내가 그 남자 때문에 피를 토하며 죽는 고비를 넘겼는지,
내가 암 수술을 받은 환자인지 나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가 쓰러진 것도, 정신병원을 기어오르던 일도, 그가 쥐약을 먹고 널브러져 있었던 일도,
작은집 가듯 자주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도, 내 팔이 부러지고 눈알이 터졌던 일도,
온몸이 멍으로 푸른 바다를 짊어지고 다닌 것도, 하늘과 땅이 딱 들러붙는 생의 이상 현상도,
그가 숨을 거둔 일도 생각나지 않아.
24년이라는 그의 환자 생활 속에서 내가 열두 번도 더 곤두박질하며 죽음 연습을 했던 것도
나는 생각나지 않아. 시어머니가 9년이나 환자로 누워 있었던 사실도 기억나지 않아.
다 모르는 일이야. 나는 모든 걸 잊어버렸어.”
시인 신달자의 고백이다.
신달자는 삶의 실존론적 고뇌를 섬세한 여성의 감성으로 표현하며 우리 문학에서 여성 시의 영역을
개척하고 대표해왔다.
신달자 시인은 자신의 화려한 삶 뒤에 감추어진 처절한 고통의 나날들을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에서 고백한다.
신달자 시인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며, 시어머니와 어머니의 죽음,
본인의 암 투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과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고통을 이겨 낸 그녀의 감동적인 인생 드라마를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에서 시인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깨달은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 주며,
“영원히 싸우고 사랑해야 할 것은 오직 인생뿐”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질곡의 세월 속에서 탁월한 감수성으로 건져 올린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깊은 사유를 때론
열정적으로, 때론 담담하게 풀어 나가는 시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노라면
삶의 한 고비를 넘어온 여성의 여유로움과 따스함, 모성과 포용력이 느껴진다.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시인의 눈이 뜨겁다.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는 딸 같은 제자인 ‘희수’에게 지난날을 말해주는 형식으로 4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산문 중간 중간에는 당시의 감정을 눈물로 쓴 1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들을 보는 독자들은 시인의 삶이 어떻게 그녀의 시의 뿌리를 이루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줄거리
대학교수인 남편이 결혼 9년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한 달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만 반신불수가 된 남편과 팔순 시어머니, 어린 세 딸아이를 뒷바라지하며 지옥 같은 현실을 헤쳐 나간다.
간신히 학교에 복귀하지만 뇌졸중 후유증으로 사회생활이 쉽지 않은 남편을 물심양면으로 돌보지만,
자괴감과 절망감에 빠진 남편은 시인에게 매질을 하는 등 점점 난폭해져만 간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설상가상으로 시어머니까지 쓰러져 9년 동안 병상에 계시다 돌아가신다.
기구한 운명 앞에 신을 원망하였지만 종교에 귀의한 후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보따리 장사로 생활을 꾸려 가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문학과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한다.
대학교수의 꿈도, 베스트셀러 작가의 꿈도 이루지만 끝내 남편은 세상을 뜨고,
시인마저 유방암 판정을 받는다.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신 달 자 시인.
경제학 교수였던 남편(고 심 현성 마르티노, 전 숙명여대 교수)이 1977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녀 나이 35세 때의 일이다.
한 달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남편은 반신불수가 됐고,
수발은 24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녀는 일찌감치 촉망받는 시인이었지만, 시는 남편의 약값도,
셋이나 되는 아이들의 과자 값 벌이도 안됐다.
결국 양복천을 팔기 위해 보따리장수에 나섰다.
정신을 차릴 즈음,
이번에는 시어머니가 쓰러져 꼬박 9년을 ‘앉은뱅이’로 살다 아흔에 세상을 떠났다.
다 끝난 줄 알았던 잔혹한 운명은 자신마저 내버려두지 않아
그녀 역시 유방암을 이겨내야 했다.
혹자가 겪었더라도 ‘얘깃거리’가 될 만큼 가혹한 운명이다.
그런데 이런 지옥 같은 삶의 주인공이 신 달자 시인 (엘리사벳. 64세.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늘 세련되고 화사하며,
매력적인 눈웃음을 짓는 시인의 이야기라고 누군들 짐작이나 할까.
신 달자 시인이 ‘대학 교수’, ‘한국문단의 대표 여류 작가’라는 화려함 뒤에 꼭꼭 감추어놨던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저자에 따르면 이 에세이는
‘대학 정년퇴임 마지막 해를 앞두고 펴낸 책’이다.
남편이 타계한 이듬해인 2001년에 이미 써뒀으나,
치부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아 출판 결정을 수백 번은 번복했단다.
그러나 자신 같은 삶을 살았던 독자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어 출간하게 됐다.
에세이는 그녀가 딸처럼 여기는 제자 ‘희수’에게 과거를 술회하는 형식으로
‘소설 같은’ 삶의 편린들을 44개장과 13개의 시편에 담았다.
시인이 피를 토하듯 쏟아내는 인생사를 보면 우선은 작가에게 그러한 삶의 고난이 있었음에
놀라고,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에서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온 가족 집단자살’을 생각하고,
‘남편의 심장을 쏘기 위해 소리 없는 총’을 구하고 다녔으며,
‘시어머니를 너무 미워해 여름 밤 벼락이 치면 벼락 맞을까봐 나가지를 못했다’는
악다구니를 해 댈까.
그녀는 당시의 수난을 한 마디로 함축했다.
‘나는 아프지 않았지만 죽었고, 그는 아팠지만 살아있었다.’
시인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것은 신앙이었다.
남편이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하염없이 거닐다 발걸음이 다다른 곳은 언제나 성당이었다.
그녀는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주여, 주여’ 울부짖곤 했고, 곧 바로 천주교에 귀의했다.
남편은,
결국 ‘나 죽거든 결혼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시인은 남편이 참 복되게 떠났다고,
스스로도 지나고 보니 고통스러웠던 일보다
잘 견뎌낸 일만 남더라고 했다.
시인은 이제 홀로 남아 시를 쓴다.
이제는 ‘다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됐고,
더 이상 세상에 진 ‘빚’도 없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그 남자 때문에 콱 혀 깨물고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다시금 아내이고 싶다.’
고 고백한다.
신명나게 도마질을 하고 수다를 떨면서
‘여보! 여보!’
그렇게 자꾸 남편을 부르며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그에게 맛보라고 권하고 싶단다.
시인에게 남은 삶은 더 이상 고통도 아픔도 아니다.
세상에는 절제절명으로 불행한 일이 없다는 진리도 깨쳤다.
그녀는 절망의 늪에서 건져 올린 희망의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하느님이 나의 게으른 습관을 잘 아셔서
나를 부지런하게 하기 위해 무거운 일거리를 주신 것인지 몰라. (중략)
.
그래서 나는 열심히 살았고 열정을 잃지 않았고,
무너진 산에 깔려 있으면서도 사랑을 믿었고, 내일을 믿었고,
하느님을 알게 되었으며 축복을 받았고, 딸들을 얻었으며,
무엇이 가족 사랑인지 알았고, 어머니는 강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내게 영원히 싸우고 사랑할 것은
삶이며 아름다운 일상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 . . . . . . . .
- 가톨릭 신문에서-
“나는 그 순간 운명을 안아버린 것이다.
내가 운명을 받아 안았으므로 그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점심으로 국수를 먹고 있던 순간, 젓가락을 놓치면서 신달자의 남편은 옆으로 쓰러졌다.
신달자는 그 순간 남편의 운명을 떠안아 버렸다.
그녀의 남편은 전도유망한 진보적 경제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쓰러지는 남편과 함께 받아들인 운명은 잔인하게 24년간 그녀를 괴롭혔고
그녀의 남편은 2000년 10월에 마지막 잠이 들었다.
시인 신달자의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는 그녀가 남편을 보내고 몇 년 후,
사랑하는 제자에게 그동안의 삶과 회한들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형식의 에세이집이다.
신달자의 남편은 뇌졸중으로 쓰러지던 날부터 23일 만에 눈을 떴다.
그동안의 미안함을 뒤로하고 훌훌 털고 일어날 것만 같았던 그녀의 남편은 더디게 회복되었다.
그의 왼쪽 몸은 마비되었다.
당시 그녀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세 명의 딸을 키우고 있었다.
막내는 세살이었으며 그녀의 나이는 서른다섯이었다.
집으로 퇴원한 후에도 그녀의 남편은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하여 자살소동으로 정신병원
생활도 하고, 미친 듯이 웃어대는 희귀병을 앓기도 하였다.
아내에 대한 폭력도 잦았다.
남편의 간병에 모든 체력과 정성을 쏟아 넣고 있었던 시기에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가능성을 보고 무한한 정성을 쏟았었다.
결혼 후 만신창이가 된 작가를 내내 바라보기만 하던 그녀의 어머니였다.
신달자는 어머니에게 제대로 용돈 한번 드리지 못했다는 무참함에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얼마 후에는 시어머니도 허리를 다쳐 꼬박 9년을 꼼짝 못하고 자리에만 누웠다가 돌아가셨다.
시어머니 간호도 신달자의 몫이었다.
시련을 겪는 고비마다 그녀는 많은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야말로 ‘살이 타고 뼈가 녹아 쇳물같이 흐르는’ 눈물이었다.
그러기를 24년, 작가가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운명은 그녀를 놓아 주었다.
신달자가 대학교에 구걸하다시피 하여 다시 교수직을 받은 남편은 월급을 받아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녀는 생계를 위하여 옷감을 파는 보따리 장사를 시작하였다.
보따리를 안고 찾아간 친척집에서 멸시를 당하고 그것마저 그만둔다.
그녀는 하루 동안의 간절한 단식기도를 통해 먹고 살 방도를 찾으려 했다.
그녀의 결정은 나이 40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같은 보따리를 들고 다니지만 이제 지식을 파는 강사가 되었다.
그녀의 표현대로 ‘남편이 주는 몇 푼의 돈으로 두부와 콩나물을 사면서 대책없이 아이만 낳고
살았던’ 그녀가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원수같은 남편을 묻고 나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그와 보냈던 세월이 좋았다고
신달자는 회상한다.
긴 대화는 아니었지만, 간단한 이야기도 당시에는 좋은 줄 모르고 지냈다고.
“여보, 비 오네.”
“또 비가 오네, 장만가 봐.”
지금은 혼잣말로 ‘비가 오네, 눈이 오네, 바람이 부네’ 하고 있으면 그가 그리워진다고 한다.
얼마 전 그녀는 유방암 환자가 되었다.
직접 본인이 수술과 치료를 받아보니 그리도 자기를 못 살게 굴었던 남편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신달자의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는 참으로 솔직하게 쓰인 책이다.
남편의 폭력은 누구라도 쉽게 꺼낼 수 없는 얘기지만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녀의 글 어디에도 고고(呱呱)한 시인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저자는 환자를 보살피는 동안 헛돈을 쓰는 일이 많으니 경계하라는 실용적인 충고도 잊지
않았다.
시련 앞에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에서 그녀는 ‘자존심’때문 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애들과 시어머니를 두고 결코 쓰러질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에 배우자를 살리려고,
나아가서 정상인과 같은 상태로 회복시키려고 애썼다.
실제로 남들 보기에 그녀의 남편은 거의 정상인에 도달하였다.
나는 저자의 말처럼 ‘그녀의 자존심’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인 신달자의 내면에 깔린 인간에 대한 애정, 생명에 대한 경외(敬畏),
거부 할 수 없는 양심이 남편을 살려내고,
시어머니를 간병하고, 생존을 위하여 40세에 다시 학교를 다니게 만들었다.
그녀는 병에 대해서 무지(無知)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계산적이지 못했다.
신달자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간호하면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세 딸을 길러야 한다는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다.
그 하루들이 모여서 후회없는 삶을 만들어냈다.
행동 후 내일의 피곤함이나 곤궁함을 생각지 않고 행동의 본질만 생각하는 선한 사람들이
우리 이웃에 있다.
시인 신달자가 그런 이웃이고 그녀를 통해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본다.
..
'좋은 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겨울밤 - 이해인 (0) | 2014.12.19 |
---|---|
[스크랩] 겨울 / 조병화 (0) | 2014.12.05 |
[스크랩] 가을에 아름다운 사람 / 나희덕 (0) | 2014.10.11 |
[스크랩] 그냥 - 오탁번 (0) | 2014.09.24 |
[스크랩] 아름다운 위반 / 이대흠 (0) | 2014.09.08 |